레이블이 영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영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영화 리뷰] 빅쇼트 (2015)


빅쇼트(Big Short)는 할리우드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획력과 스토리텔링을 갖춘 영화다.

빅쇼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예측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가 월스트리트 은행을 상대로 큰 돈을 벌어들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빅쇼트에 나오는 용어와 개념은 관객들에겐 생소하다. 영화는 그런 관객들을 위하여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안소니 브루댕 등 카메오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 개념을 알려준다. 



특히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가수 셀레나 고메즈가 나와 블랙잭 게임을 하면서 합성CDO를 설명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한다. 마이클 버리, 마크 바움, 벤 리커트의 예상대로 서브프라임의 부실 정황이 드러나고 서브프라임 스와프 옵션의 가치가 급상승해서 리먼 브라더스, 컨츄리와이드, 베어스턴스 등 월스트리트 은행들을 물먹였을 때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반응했다. 그들은 우울해했고, 이 승부가 미국 경제가 붕괴되고 수백만명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내쫓기면서 만들어진 승리라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꼈다.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 주인공을 통해서 느끼게 됐다.




실화는 어떤 픽션보다 극적이다. '빅쇼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후 이야기를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냈기에 긴장감이 넘쳤다. 이 기획력이 영화 스토리를 전개하는 힘이 되었고 관객들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빅쇼트는 경알못(경제 알지 못하는 사람)도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동진 평론가가 빅쇼트를 두고 왓챠에 한줄 평을 남겼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찾기 힘든 종류의 재능'



나도 이 평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로맨틱한 여행의 기억, 비포 선라이즈 (1995)


나에겐 홀로 낯선 여행지를 다니며 우연히 멋진 여성을 만나는 판타지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유럽으로 훌쩍 떠났다.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매력적이고 멋진 여자들을 여럿 만났었고 가슴 설레는 순간들도 많았다.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거 '비포 선라이즈'잖아."

사실 '비포 선라이즈'가 유명한 영화라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에 도대체 비포 선라이즈가 뭐길래 이렇게 얘기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를 다운받기 시작했다.


'이거 내 얘기잖아!!'

'비포 선라이즈'를 보자마자 바로 이 생각이 들었다. 제시(에단 호크)가 비엔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셀린(줄리 델피)과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모습에서 몬세라트 가는 기차 안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제시와 셀린의 시시콜콜한 대화는 '비포 선라이즈'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만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왜 저렇게 시덥지도 않은 얘기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파리에서, 런던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돌아다녔던 것이 기억났고, 이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업로드 되지 않은 여행의 진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지에서 종종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세요?"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난 "한국에선 이러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주변 사람들과 얘기할 땐 내 체면을 생각하고 내 말에 대한 뒷감당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있지도 않았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친해져서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가식없는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레코드 방에서 서로를 몰래 바라보며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장면,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전화 상황극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이토록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영화가 또 있을까? 이토록 로맨틱한 영화가 또 있을까?




이 영화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줄리 델피에 있다. 에단 호크와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넘기는 그 모습이 청순하면서도 굉장히 섹시하게 느껴졌다.  에단 호크를 바라보는 눈빛, 표정도 너무나 달콤했다. 

6개월 뒤에 제시와 셀린은 다시 만났을까?



(라고 생각할 때 후속작 '비포 선셋'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여운은 사라졌고, 그들의 재회가 기대됐다.)